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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9-07-02 17:32 조회2,7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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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출가하던 날   ② - 동은 스님
  • 동은 스님
  • 승인 2019.06.25 11:01




“부처님! 못난중생 허우적대다 입산했습니다”

부모님께 용서구하는 편지글
내내 건강하시라 빌면서 출가

병고 없었다면 출가 못했을 것
출가수행 위한 인연차 공덕에
몸속의 병고 씻은듯 낫는다면
아픈 중생 위해 살 것 발원해
그림=허재경그림=허재경

“부모님께 올립니다.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키워주고 보살펴주신 은혜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 은혜 제대로 갚지도 못하고 저는 출가합니다.…<중략>…. 부디 저를 용서하시고 못난 아들 그리울 때면 열심히 공부해서 불도 이루기를 기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소서.” 

밤새 가족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쓴 나는, 부모님이 주무시는 방 앞에서 아홉 번의 절을 했다. 낳아주신 은혜에 3배를 하고 길러주신 은혜에 3배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혹시 돌아가시더라도 찾아뵙지 못할 것을 생각하여, 아니 어쩌면 부모님보다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지도 몰라 미리 3배를 드린 것이었다. 편지를 둔 마루에 눈물이 뚝뚝 흘렀다. 마당에서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도로 확장으로 마당이 잘려 나가기 전엔 꽤 아름다운 집이었는데 아마 다시 이 집에 오기는 힘들겠지….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었다. 드디어 집을 나섰다. ‘출가(出家)’. 골목은 인적이 끊겨 조용했다. 멀리서 가끔 개 짖는 소리만이 밤의 적막을 깨트렸다. 마을을 벗어나자 남강으로 이어지는 둑방길이 나왔다. 풀잎에 맺힌 새벽이슬이 달빛에 보석처럼 빛났다. 갑자기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이 신 새벽에 길을 나서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삶은 무엇이고 죽음 또한 무엇인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진주방울이 되어 걸음마다 떨어졌다. 한참을 걸어서 남강철교에 도착했다. 

멀리 여명이 밝아올 무렵 먼지를 일으키며 마산행 첫차가 달려왔다. 통학하는 학생 몇 명과 어르신들이 타고 있었다. 마산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탄 나는 부산동부정류장에서 강릉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금도 부산에서 강릉 가는 직통버스가 5시간 정도 걸리지만, 30여년 전 그때의 7번 국도는 거의 하루 종일 걸리는 시간이었다. 포항을 지나 영덕으로 접어들자 본격적인 해안도로가 이어졌다. 멀리 수평선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을 도려냈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들은 어지러운 내 상념만큼이나 오락가락했다. 하얗게 넘실대는 파도는 지나온 나의 온 생애를 한 페이지씩 넘기는 듯했다. 

강릉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었다. 오대산 들어가는 버스는 진작 끊긴 상태였다. 대합실에 널려있는 신문지를 덮고 의자에서 새우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진부를 거쳐 월정사 가는 차를 탔다. 월정 삼거리를 지날 무렵 버스에서 ‘해바라기’가 부르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모두가 이별이에요. 따뜻한 공간과도 이별. 수많은 시간과도 이별이지요. 이별이지요.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오네요. 이것이 슬픔이란 걸 난 알아요.” 

살아가면서 기억에 남는 음악이 있다. 내게 출가송이 되어버린 그날의 이 노래는 나의 심장에 각인이 되었다. 

“아! 내가 출가하는 날 어떻게 이 음악이 나오지? 세상도 나의 출가를 알고 슬퍼하는 건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버스는 전나무 숲길로 들어섰다. 일주문 앞에 내렸다. ‘오대산 월정사’라 쓴 일주문이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열려(?)있었다. 통곡할 힘조차 빠져 나가버린 텅 빈 몸에, 시원한 바람과 상큼한 숲속 기운이 온 몸을 휘감았다. 드디어 ‘입산(入山)’ 하였다. 

계곡을 따라 걷다보니 용금루 앞에 이르렀다. 계곡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금강연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물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무심히 물결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몸이 노곤해지더니 졸음이 쏟아졌다. 오랜 방황으로 지친 몸과 마음이 마치 봄 눈 녹듯이 무너져 내렸다. 긴 의자에 누워 한 숨을 잤다. 참으로 오랜만에 자는 맑고 푸른 잠이었다. 잠에서 깨니 상쾌한 기운이 온 몸을 채운듯했다. 

월정사 마당으로 들어섰다. 도량을 둘러보다가 삼성각이라는 작은 전각으로 들어갔다. 절을 하는데 불전함에 ‘불교병원건립모금함’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불교병원건립을 한다고?”, 주머니를 뒤적이니 백 원 동전이 나왔다. 나의 전 재산이었다. 그 돈을 시주하며 부처님과 약속을 했다. 

“부처님, 이 못나고 억울한 중생, 운명이란 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리다가 부처님 품으로 들어왔습니다. 출가수행 인연공덕으로 이 몸의 병이 나으면, 남은 생은 덤으로 생각하고 아프고 힘든 중생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하고 나와 법당의 부처님께도 입산 신고를 마쳤다.

“거사님은 왜 출가를 하셨어요? 보니 공부도 꽤 잘 하셨구먼.” 

미리 준비해간 출가서류를 훑어보던 스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당시에는 출가서류에 성적증명서까지 제출을 해야 했다. 

“출가요? 아파서 죽는다기에 너무 억울해서 부처님께 한 번 따져보려고 출가 했지요”라고 답하려고 생각했으나 입에서는 “네, 부처님 가르침이 너무 좋아서 수행자의 길을 걷고 싶어 출가했습니다. 저를 받아 주시면 정말 열심히 수행해서 꼭 불도를 이루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어 목소리는 거의 애절하다시피 했다. 

“흠, 그럼 일단 객실에 가서 며칠 지내보고 마음이 결정되면 이야기 하세요. 그때 정식으로 행자로 받아줄 테니까요.” 

행자 반장이 객실로 안내했다. 깔끔하게 정돈이 잘 된 작은방이었다. 여기 오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조용히 앉아 나의 지나온 삶을 정리해보았다. 발병 후 방황과 출가. 격동의 시간이었다.

살짝 잠이 들었나보다. 범종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예불 시간이었다. 방을 나서니 밤하늘에 보석을 뿌려놓은듯 별이 총총했다. 법당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치 석굴암 부처님처럼 법당의 본존불은 크고 웅장했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마치 천상에서 들려오는 음악 같은 예불소리가 지나온 삶의 모든 고뇌를 씻어주는 듯했다. 

“그래, 다시 시작이다. 하루를 살던, 십 년을 살던 지금부터 사는 삶은 덤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이제 수행자의 길을 택했다. 지금부터의 삶은 깨달음의 등불을 켜기 위해 빛을 모으는 시간이다. 오직 간절하게 수행에만 전념하자.”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틀을 깨고 나와야만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출가는 노병사(老病死)의 충격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dosol33@hanmail.net

 

[1494호 / 2019년 6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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