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누비는 ‘아키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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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04-01 09:24 조회6,2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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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누비는 ‘아키라’의 꿈
수해스님/기행문학가
나마스테! 이곳은 ‘앙코르(Angkor)’ 유적이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시엠립(Siem Reap)입니다. 저는 지금 크메르 석조예술의 정수(精髓)를 보여주는 앙코르 유적지를 순례하고 나오는 길에, 잠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와 있습니다.
지금 제가 방문하고 있는 곳은, ‘앙코르 왓(Angkor Wat)’ 입구에서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지뢰 박물관(Landmine Museum)’ 입니다. 입구에서부터 다양한 지뢰와 각종 불발폭탄(UXO)들이 가득히 전시되어 있는 이곳은, ‘크메르 루주(Khmer Rouge, 캄보디아의 급진적인 좌익 무장단체)’ 소년병 출신이었던 ‘아키라(Mr Akira)’씨가 운영하는 사설 박물관입니다.
현재 이 지뢰 박물관의 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아키라 씨는, 매우 독특한 인생경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다섯 살 때 크메르 루주에 의해 부모를 잃고, 베트남군과 캄보디아군에서 명령을 받고 캄보디아 전역에 지뢰를 매설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비록 어쩔 수 없는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고국의 산하에 지뢰를 매설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참회하기 위하여, 자신의 남은 인생을 지뢰제거 작업에 바치기로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크고 작은 각종 지뢰들이 도열해 있는 아키라씨의 지뢰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보면, 중앙에 작은 팔각정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팔각정 좌우로 네 동의 지뢰전시관이 서 있는데, 그 안에는 캄보디아 전역에서 수거해 온 다양한 종류의 지뢰와 폭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뢰전시관 입구의 시청각 자료실에서는, VTR 화면을 통해 지뢰와 관련된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과오 참회하기 위해
남은 인생 지뢰 제거에 바쳐
지뢰전시관 후원금.입장료로
부상당한 아이들 교육비 조달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장애인 음악가의 구슬픈 선율이 …
화면 속에서는, 드넓은 벌판에 아이들이 모여서 축구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축구공을 따라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자세히 응시해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팔 다리가 한쪽 씩 달아나고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두가 들판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불발지뢰를 가지고 놀다가 사고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현재 아키라씨는 이 지뢰박물관 한쪽에서, 지뢰를 가지고 놀다가 부상을 당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아이들을 위한 캄보디아 정부의 지원은 전무(全無)한 상태입니다. 오로지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의 후원금과 입장료(1$)에 의해서, 아이들의 의식주와 교육비가 간신히 조달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잃어버린 지난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매설된 지뢰를 찾아 드넓은 ‘킬링 필드(Killing Fields, 죽음의 들판이라는 의미로,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정권 때 크메르군에 의해 수천명이 학살되어 매장된 곳)’를 누비고 있는 아키라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땅거미가 뉘엿뉘엿 내리는 똔레쌉 호수 위로, 어디선가 구슬픈 선율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앙코르 유적지와 지뢰 박물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도로 한쪽에서, 역시 지뢰로 인하여 팔다리를 잃은 장애인 음악가들이 모여, 캄보디아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소리입니다.
아무쪼록, “지뢰가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의 세상”을 희망하는 아키라 씨의 소박한 꿈이, 보다 더 많은 이들의 현실화된 꿈으로 확산되기를 염원해 보는 저녁. 오늘따라 크메르의 대지 위로 아스라이 퍼져나가는 캄보디아 민속음악의 선율이, 유난히도 구슬프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불교신문 2703호/ 3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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