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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정 스님! 지금 좋은 인연 짓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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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05-26 10:18 조회6,4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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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반 이야기 - “광정 스님! 지금 좋은 인연 짓고 계시죠?”




월관 불광 393에 실린글을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게제하였습니다.

주경 스님/서산 부석사 주지



“어디서 왔소?” 광정 행자가 물어왔다. 3일을 객실에서 머물며 이미 얼굴도 익혔고, 신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았을 텐데 새삼스럽게 질문을 던져왔다. “서울에서 왔습니다.” “하하하, 행자실 입실을 환영합니다.” 광정 행자는 그렇게 정식으로 인사를 해야 마음이 개운한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그는 눈에 띄게 인물이 좋고 당당한 체구를 가진 데다, 인상이 좋고 말투가 시원스러워 첫눈에도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10여 명의 행자들 중 가장 먼저 입산한 행자반장으로 모든 일에 자신이 있고 능숙하였다. 항상 뒤에 입산한 행자들을 위해 마당을 쓸 때 비질하는 법에서 법당청소 하는 법, 설거지며 각종 울력에 대한 세세한 요령을 자세하게 가르쳐주곤 하였다. 다만 염불이나 의식은 스님께 직접 배워야 한다며 조심스러워 하였다.


행자들의 하루일과는 새벽 3시가 되기 전에 법당문을 열어 예불준비를 하고, 도량석을 도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새벽예불을 마치면 잠시 간경(看經)을 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물을 덥히고 아침공양을 준비했다. 공양을 마치면 설거지와 도량청소가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되는 하루는 잠시도 짬이 없었다.


당시 수덕사는 중창불사로 울력이 끊이지 않았다. 거의 매일 중노동에 가까운 울력으로 무척 힘이 들었다. 게다가 덕숭총림 2대 방장이시던 벽초 노스님의 열반으로 매주 3천 명이 넘는 손님들을 대접하는 일까지 겹쳐 정말 눈코 뜰 새 없는 하루하루였다. 그래서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염불을 외웠고, 쪽지를 들고 다니면서 의식과 초발심자경문을 공부하곤 했다. 몇몇 행자들은 당시 본사주지스님이던 설정 스님께서 직접 해 주시던 초발심 강의시간에도 피로를 이기지 못하여 졸음에 빠지기도 했다. 광정 행자는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원칙과 융통성의 조화를 찾아 행자실의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행자실 분위가 어수선해졌다. 광정 행자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광정 행자의 가족들이 광정 행자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때서야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했던 광정 행자의 어려움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 광정 행자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수덕사를 떠나게 되었다.


수계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즈음에 그렇게 떠난 광정 행자를 다시 만난 것은 다음해 봄이었다. 가족들을 피해 다른 절에서 계속 행자생활을 하고 수계를 해서 왔던 것이다. 절을 옮겼어도 처음 모셨던 그 은사스님 아래 같은 법명으로 계를 받았다. 보통 절을 옮기게 되면 다른 인연을 만나게 되는 것이 통례인데, 광정 스님은 그 고지식하고 곧은 성격으로 처음 맺은 인연을 지킨 것이었다. 그때 광정 스님은 강원에 입방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대중살이가 무척 만족해 보였다. 방학을 하면 한 번씩 다녀가곤 했는데, 얼굴에는 늘 광채가 있었고 호탕하고 시원스러운 모습이었다. 비록 수계는 한 해 늦어졌지만 행자생활을 같이 한 도반으로 서로 의지가 되고 든든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광정 스님은 강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퇴방을 하게 되었다. 아마 가족들이 강원에 있는 것을 알고 다시 찾아갔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강원을 나와서 한동안 걸망을 메고 선원을 다니며 정진하였다. 선원에 다니면서도 열심히 정진하였는지 간간이 도반들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광정 스님의 방황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정진에 집중하지 못하고 많이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철 만행 길에서 우연히 광정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고 반가운 마음에 문득 두 손을 잡았다. 광정 스님은 많이 지쳐보였다. 의욕도 식어있었고 말투에서도 출가수행생활에 대한 체념의 빛이 역력하였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헤어지고는 몇 년 소식을 알지 못했다. 은사스님께 법복을 돌려드리고 환속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차마 직접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해인사강원에서 공부할 때였다. 광정 스님의 49재가 들어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너무 놀라운 소식이었다. 광정 스님이 해인사강원에서 공부를 했고, 평소 가족들에게 자주 이야기를 했었던 까닭에 해인사로 왔던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자리를 하게 되었다. 몇 해 전 환속을 해서 결혼도 했단다. 생업을 위해 일하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다는 것이다. 유복자를 가진 가녀린 부인은 스님들을 보고 슬픔 속에서도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앨범을 보며 자주 이야기를 들어 처음 보는 스님들도 다 알아보았다. 가족들이나 도반들 다 같이 후회와 여한이 많았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한마음으로 내생에는 좋은 인연으로 출가수행의 인연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광정 스님! 지금 좋은 인연 짓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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