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레인 운전하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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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09-23 09:18 조회8,8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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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사중불사에
손수 굴삭기(포크레인) 운전을 한다는 스님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스님들이 울력으로 직접 집을 짓는 것은 더러 보고 들었지만
중장비 운전까지 한다는 말은 처음 접하였기에 신기한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잘 듣다보니 그 신기한 스님이 바로 금강스님이었다.
10여 년 전 강원에서 공부할 때 ‘전국승가학인연합’ 모임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우리는 해인사 강원의 대표로, 중앙승가대학 대표로 서로 만나게 되었다.
금강스님은 둥근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낀, 깔끔한 외모에
얼굴에는 항상 맑은 웃음을 띄고 있어서 첫 만남에도 오랜 지기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회의를 할 때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논리가 정연하면서도 인간적이며 여유로운 융통성마저 가져서
‘젊은 스님이 어떻게 저렇게 다듬어져 있을까’ 하는
놀라움과 더불어 부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금강스님이 살고 있던 해남 미황사는 유서깊은 고찰이지만,
우리나라의 땅 끝, 해남이라는 외진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신도의 시주가 넉넉치 못했을 테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아껴서 불사를 하던 은사스님께 도움이 되고자 한 것이
굴삭기 운전을 하게 된 이유인 듯 했다.
시간이 지난 뒤 우연히 조계사 인근에서 금강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는 나라에 경제위기가 와서 국제금융IMF의 지원을 받아야 했고,
그로 인해 사회에는 실직자가 넘쳐나고 노숙자 문제가
점점 사회적으로 심각해지던 상황이었다.
모두가 앞날을 예측 못하는 혼미한 국가의 경제상황은
불교계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지만,
근검절약이 몸에 밴 대부분의 절과 스님들은
조금 더 아끼고 살자는 소극적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금강스님은 백양사에서 수련법회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실직자를 위한 수련법회’를 위해 자료도 구하고 종단의 지원을 받아보려고 왔던 길이었다.
미황사를 떠난지 시간이 제법 흘렀는 데도 금강스님의 얼굴엔
굴삭기 운전할 때 햇볕에 타서 점처럼 생긴 검은 자국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맑고 기운찬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당시 타 종교나 사회단체에서의 실직자와 노숙자에 대한 지원과 대책마련에 비해
한없이 빈약하기만 하던 우리 불교계의 관심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는데,
금강스님의 실직자를 위한 수련회는 비록 그 결실이 크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사회를 바라보는 눈 바로 뜨고, 깨어있는 스님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몇년전 조계종 포교원의 소임을 맡아 왔을 때,
함께 일할 스님자리가 비어있어 추천이 필요했다.
바로 금강스님을 생각하고 전화를 했지만 자신은
아직 산사에서 더 기도하고 정진하고 싶다고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해 여름 신문에서 미황사에서 어린이 한문학당을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물론 금강스님이 도맡아서 준비하고 진행하는 일이었다.
“그 벽지 외딴 곳에서 어떻게 어린이 한문학당을 하겠다고…”
걱정도 되고 소식도 전할 겸 전화를 넣었더니 무척 밝고 쾌활한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너무 잘 돼서 걱정”이라며 자신이 넘쳤다.
오랫동안 심사숙고하여 준비하고 치밀한 계획과 다양한 프로그램운영,
그리고 땅끝이라는 지역적 취약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시켜 인근 학생들뿐 아니라
멀리 외지에서도 문의가 쇄도한단다.
“어차피 그렇게 일을 할 거면 서울에 와서 좀 하지 그랬냐”는 타박에
껄껄 웃으며 자신은 서울체질이 아니란다.
지난 가을 포교원 소임을 그만두었다가,
올해 한일 월드컵 게임을 맞아 ‘템플스테이’일을 맡아 다시 서울로 왔을 때,
템플스테이 신청사찰 명단에서 미황사를 찾을 수 있었다.
유수한 본사들도 신청조차 하지 않은 곳이 있었고,
외국인을 맞아 불교 전통문화를 체험시키는 프로그램은 지금껏 없던 일이라
말사인 미황사에서 감당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금강스님은 어느 절보다 확고한 신념과 비전을 가지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설사 정부나 종단의 지원이 없어도 참여하겠다는 분명한 입장과 태도가
미황사를 템플스테이 운영사찰에 선발되게 했다.
템플스테이가 진행되는 동안 미황사는
거리와 시간에 관계없이 체험을 원하는 외국인에게 추천하는 중요한 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땅끝이라는 매력과 더불어 금강스님이란 믿음직한 스님이 있는 까닭이었다.
가을이 저물어 갈 무렵,
금강스님과의 통화에서 미황사에 올 여름동안 사람들이 1만명은 다녀갔다고 들었다.
물론 단순한 관광객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절을 찾아 무언가 체험하고 새로운 인연을 맺은 사람들일 것이다.
금강스님은 같이 먹고 자면서 정을 쌓고 인연을 맺은 적은 없지만
정말 뜻이 통하는 도반이다.
그리고 절이나 스님을 소개해 달라거나 불교의 인연을 구하는 누구에게라도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는 멋진 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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